영화 관람에 관한 '한 달에 한편' 이라는 궤변을 내세워, 10월에도 어김없이 영화를 봤다.

최근에 봤던 영화를 정리해보자면, 

8월 말 개봉한 -나름 '공포'라 생각했던- 「피라냐」, '해변의 여인들(?)'과 '피'밖에 기억에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실수였다.
식인 물고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만 남았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미 멸종해 화석으로만 볼 수 있던 식인 피라냐가 서로를 먹으면서 살아남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그럴싸한 배경을 뒤로 한 채,
열심히 흔들고(?) 뜯기다가 끝난 「피라냐」를 보면서 공포 영화 소재력의 한계를 실감할 수 있었다.

서영희 씨의 열연에 빛나는「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원빈 원맨쇼「아저씨」로 9월을 보내고
10월에 볼만한 영화를 찾다가 눈을 자극하는 기사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불청객」이다. 


-- 위 포스터의 검은 녀석이 악당 포인트맨이다 --



포스터만 봐도 느껴지는 'B급 무비'의 포스에 영화 티켓값이 조금은 아깝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같은 고민은 어느 정도 기우로 끝낼 수 있었다.



1. 평범하지만 특징적인 등장인물, 게다가 남 얘기 같지가 않아?!



-- 진식, 강영, 응일의 성격이 잘 나타난 사진이다 --

영화 속에 나오는 주요 등장 인물은 크게 4명.
진식, 강영, 응일 그리고 악당 포인트맨이다.

눈치 있는 분들은 이미 알시겠지만, 등장 인물의 실제 출연진의 이름과 동일하다.
감독 이응일의 실제 자취방 멤버들을 캐스팅함으로서, 극중에 유명출연진은 고사하고 모두 옆집 형 동생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보통 관객은 주연배우에게 동화돼 감정의 동선을 따라가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진식'의 개인적인 독백에 의지하여 진행된다. 

진식은 자취방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으며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다.
강영은 감수성이 풍부하여 평소 리코더 자주 부는 캐릭터로, 응일은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철없는 막내캐릭터로 등장한다. 
평범하지만 뚜렷한 특징을 지닌 세 캐릭터의 만남에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 준비를 하는 진식에게 리코더를 불어대는 강영은 얄미운 존재다. 몰래 리코더의 반쪽을 분리해 강영이 못찾게 숨겨버린다. 
또 게임만하는 응일을 Loser로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공무원 시험에서 합격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다고 생각하면서 살고있다.

-- 항상 리코더를 부는 강영 --

-- 우주에서도 진식은 공부로 현실을 극복하려한다--



하지만 공무원이 진식의 꿈은 아니고. 단지 나은 삶을 위한 하나의 도구쯤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진식과 강영, 응일 셋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또한 공무원 시험 준비나 다른 핑계들로 자신의 처지를 방패막이를 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도 많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진식이 현실성 떨어지는 강영과 응일을 인생의 패배자로 생각하고 미워하는 것은 자신과 그들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꼇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영화 속 진식의 모습을 욕할 수는 없다.  진식의 모습은 영화를 보고 있는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객과 동화된 진식을 통해 영화는 진행된다.




2. 포인트맨과의 결투와 단합의 의미


어느 날, 허름한 소포상자.

상자 겉표면에는 '봉인해제 시 계약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고, 상자를 앞에두고 진식과 강영은 고민을 한다.
그 사이, 응일은 아무 생각없이 상자를 뜯는데 그 순간 포인트맨이 등장한다.
포인트맨은 은하연방 소속 수명은행과의 계약이 성사됐음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반항하는 응일을 초능력으로 제압한다. 
응일이 우리 말도 못하게 해버린 포인트맨은 세 명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욕하면서 집안에서만 지낼 것을 강압한다. 대신 포인트를 적립해주겠다는 이름값에 걸맞는 제안을 한다. 
포인트맨은 자신이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이며 의미있는 일을 하는 존재라고 한참을 역설한다. 그는 곧 다시올테니 잘 생각해보라는 말을 남긴채 바쁜 스케줄을 핑계로 사라진다. 
그 사이 자취방은 우주로 납치돼 셋은 꼼짝없이 감금되고 만다.

진식은 처음에는 현실을 외면하고 공부를 하려한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려고해도 현실은 현실이다. 더욱이 지금은 위험상황아닌가. 
결국 온갖 방법을 통해 무전기를 만들거 연락을 시도하지만 발견한 것은 국회의사당이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모습 뿐. 
좌절로 인해 생긴 분노로 진식과 응일은 몸싸움이 벌어지고 강영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리코더 연주로 극복하고자한다. 
그 갈등이 최고조로 달하는 순간, 뜻하지않게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소주병의 난입으로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흘러간다. 소주병안에는 포인트맨의 정체와 약점, 그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이 들어있었고 이를 알게된 셋은 의기투합하여 자취방 탈출을 시도한다. 


      -- 포인트맨과 삼각형, 영화 내내 저 삼각형은 끔찍스럽다 --              -- 세 명이 힘을 합친 3색 레이저빔, 너무 진지해서 웃을수도 없다 --


하지만 악당은 절대 한 번에 죽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포인트맨은 쉽게 쓰러지지 않고 셋의 수명을 흡수하며 괴롭힙니다. 응일과 강영의 수명을 차례로 흡수한 포인트맨은, 진식에게서 모든 수명을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그 순간 진식은 生卽必死 死卽必生 (생즉필사 사즉필생)을 외치면서 포인트맨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포인트맨을 속박한 사이에 진식은 강영과 응일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포인트맨과 블랙홀로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포인트맨의 웃음소리. 나름대로 열린 해석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실 포인트맨이 등장은 커다란 의미에서 외부적인 세력의 개입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이응일 감독은 2006년에 <불청객>의 시나리오를 쓸 당시 '론스타 사태'를 보며 초국적 금융자본의 힘이 우리의 일상마저 잠식하는 모습에 충격과 분노를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다음 영화정보 제작노트 참고>
이같은 취지는 포인트맨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사들여 연장시킬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굉장한 일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실상 평범한 보험사직원의 목숨을 연장하고자 그들의 목숨을 요구하고 있다. 

필요에 의해서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물질적인 가치관은 비현실적인 부분이 없지않지만 물질만능주의의 맹점을 사정없이 찌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가지며,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꼭 물질만능주의에서만 찾아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가치를 연봉따위로 가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포인트맨의 정체와 그 배경은 이 영화의 깊이를 주는 설정이라 할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진식, 강영, 응일이 갈등을 멈추고 단합된 행동을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부세력의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해결방법도 중요하지만 다같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 셋의 공격은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하지만 영화안에서 쓰레기로 취급받는 세명의 반격에 포인트맨도 곤혹스러워했으니까. 게다가 유일하게 셋의 단합을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닌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특징적인 세 명의 단합은 같은 상황에 처한 다양한 서민들을 표현했다고도 해석하고 싶다.
그렇게보면 불청객이 딱히 나쁜 영향만 준 것은 아니었던건가?



-- 서로 힘을 합쳐 포인트맨과의 전투를 준비하는 세 사람 --





3. 영화의 결말과 관전 포인트


잠시 후 깨어난 강영과 응일은 현실로 돌아온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는 그 경험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뺏긴 수명만큼 흰머리가 생겨있었다.
그리고 둘은 진식을 찾으러가자는 말을 하고 수북히 쌓인 고지서더미를 문으로 밀며 밖으로 나와서 목적지 없이 걸어간다. 
갑자기 이 부분에서 영화는 상당히 철학적인 의미를 담으려고 하는 듯 일상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물, 바람, 공기와 같은 것들을 정의하기 시작한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흐름에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것들의 의미를 찾아가는 강영과 응일의 모습이라면 기분좋게 받아줄 수 있을 듯 하다.
비록 마지막까지 진식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은 그들의 발걸음은 해가 저물어감에도 계속되고 있었고 그것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난다.

진식이 포인트맨과 타협(마지막에 진식을 회유하는 장면이 나오고 진식도 잠시나마 고민을 하는 장면이 있다)을 한 것이라고 보는 관객들도 있다. 또한 이러한 결말이 불청객2 를 염두에 둔 감독의 포석이라는 예상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영과 응일이 진식을 찾아나선 마당에 타협설을 인정한다면 그들의 마지막 결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타협에 관련한 부분은 안타까운 마음에서라도 배제하고 싶다. 

영화를 보면서 주목해야할 것은 '저예산 영화'답게 사용된 CG효과 부분이다. 특히 포인트맨의 등장부터 상당한 장면들을 CG로 처리했는데 사실 퀄러티로보자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특히 울트라맨, 후레쉬맨 등을 연상케 하는 3색 레이저빔으로 포인트맨을 공격하는 장면은 정말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하지만 유치해보이는 CG 효과 사이로 배우들의 결연한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한 나머지 웃음과 동시에 긴장감을 조성함은 물론, 앞으로는 어떻게 표현될 지 기대까지 하게 만들었다. 정말 유치하지만 그마저도 즐기듯 사용하는 CG 처리가 가져온 최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영화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의 '마이너'버전을 보는 것과 같은고 해야할까? 다찌마와 리에서 보여준 유치함을 무릅서고 이어지는 패러디의 봇물, 배우들 간의 대사를 일명 '옥희'체라 할 수 있는 배우들의 톤으로 더빙한 것처럼 불청객또한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불청객은 정말 저예산 영화가 아니던가? 이를 극복해낼 정도의 노력이라니 박수를 쳐주고싶다.




4. 영화 관람 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필름포럼을 서성거리는 사람을 한 명 발견했는데 뜻밖에도 이응일 감독이었다. 영화 제작에서부터 CG처리와 함께 포인트맨과 응일의 2역까지 소화해낸 그의 모습은 더도 덜도말고 딱 영화 속 응일같았다. 반갑기도 했지만 막상 말걸기가 조심스러워 몇 마디 나눠보지는 못했다. 
다만 "분당에서 여기(필름포럼 이대)까지 멀리서 오셨네요" 라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그를 보면서,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느꼈다. 자취방을 구하면 그 옆 방에 살고 있을 법한 형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차마 사진 한 장 같이 찍자고 요청하지도 못하고 쭈삣거리다가 나오고 말았다. 다른 때는 잘도 뻔뻔하면서 막상 이럴 땐 소심해진다.

어쨌거나 이렇게 불청객 관람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걱정과는 다르게 나름 보람찬 영화관람을 할 수 있어서 기분도 상쾌했다. 개인적으로 실험정신을 앞으로도 많이 발휘해서 비슷한 영화를 자주 찾아봐야겠다는 작은 결심도 하게만든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영화 불청객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영화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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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식을 좌절하게 한 국회의사당, 가장먼저 블랙홀로 빨려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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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일 감독이 직접 입고 촬영했다는 포인트맨 용 소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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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에 위치한 필름포럼 내부 사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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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 필름포럼
도움말 Daum 지도
  • Favicon of http://tikiti.tistory.com BlogIcon Tikiti 2010.10.27 13:08

    조금 지각해서 앞쪽 10분 정도를 못본게 아쉬웠지만
    정말 마구 웃으면서 봤던 영화.ㅋ
    의미심장하게 희망적이었지 :D

    • Favicon of https://maker04.tistory.com BlogIcon Ð현신 2010.10.27 17:35 신고

      유치하지만 가볍게 흘릴수가 없는 의미심장함에 숙연해지는 영화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