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영화를 몰아쳐서 보게 됐습니다.
심야의 FM에 이어 얼마전에는 현재 대세라고 하는 부당거래까지 쓸어담았는데요,
오늘 이야기해볼 영화는 조용해야할 심야를 떠들썩하게 한 「심야의 FM」입니다.




1. 모든 것을 펼쳐놓고 시작하는 도입부. 하지만 의미는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범인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줍니다.
택시, 납치, 그리고 라디오 방송. 녹음된 방송을 능숙하게 되감아 듣기까지하는 범인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첫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눈치가 빠른 분이시라면 녹음된 부분을 반복할 때 그 문구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 연쇄살인범은 영화에서조차 보고싶지 않아요"

그리고 영화는 고선영이라는 라디오 DJ의 마지막 방송 파티로 시점이 바뀝니다.
마지막 방송을 기리면서 예전에 일했던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고선영의 성격이 모두 드러납니다.
클로징 멘트로 인해 앵커자리에서 하차도 한 듯한 고선영. 고별파티에서조차 담당PD랑 티격태격합니다.
평소에 얼마나 마음대로 행동했으면 마지막 날까지 저럴까 싶은 장면이면서 보낸 적 없는 편성표에 대한 의문점.

고선영이 택시를 타고 방송국으로 이동하는데, 작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눈치있는 분이라면 영화 첫 장면의 택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오는 고선영은 그 상황에 대해서 가볍게 내뱉습니다. 물론 그 말은 나중에 자신을 옭아맵니다.

위의 공통점은, 고선영의 말로 인해 모든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선영은 앵커시절 했던 클로징멘트로 앵커에서 하차했고,
이 후 라디오 DJ에서 활동하지만, 방송에서 하는 그녀의 멘트에 범인은 집착을 합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무심코 했던 말들로 범인의 범행대상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어디서든 가볍게 내뱉는 말들도 누군가는 듣고 있을 수 있다 것이죠.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고선영의 독단적인 결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담당 PD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선곡을 바꿔버리고 이로인해 고선영은 동생을 잃게되니까요. 
이런 스토리는 타겟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섬뜩함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2. 조용한 긴장감에 숨죽이다.

영화는 고선영의 집에 한동수가 침입하면서부터 긴장감을 더 합니다.
고선영의 동생과 아이를 인질로 삼고, 고선영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시킨대로 방송을 진행하지 않으면 동생부터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한동수.

악역에 완전히 녹아들어간 유지태는 한동수 그 자체다.



심각성을 깨달은 고선영은 한동수가 낸 문제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5년간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기란 불가능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집을 조사해달라고 보낸 경찰들까지 한동수에게 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동생의 목숨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합니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가장 긴장감이 고조된 장면은 크게 두 군데로, 그 첫 번째가 위에 언급되는 한동수의 가택침입 시점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한동수의 무자비함과 그 앞에서 공포에 떠는 인질, 그리고 그에 맞서는 고선영의 대처.
이 세 가지가 팽팽하게 맞서야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그 중 가장 백미는 말할 수 없는 은수였습니다.
은수는 이 단계부터 긴장함을 잘 표현해주는 감초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말을 할 수 없지만 그 덕분에 한동수에게 발각당하지 않을 수 있었고, 끔찍한 장면들을 목격하면서
조용한 비명소리를 통해 공포를 표현해냅니다. 

영화의 긴장감 조성에 한 몫한 은수. 하지만 너무 의젓하다.



너무 의젓한 부분이 또래의 아이와 비교해 어색하지만, 의사표현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은수가 겨우 전화를 손에 넣지만 전화통화가 가능한 사람이 결국 자신의 엄마인 고선영밖에 없습니다.
결국 고선영이 직접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영화는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3. 추격장면부터 마지막까지.


사실 영화는 한동수가 아이들을 납치하고 이동해버리면서 맥이 풀립니다. (영화의 주제가 불명확한 탓도 있습니다)
자신을 추격하는 경찰을 비웃으며 따돌리는 한동수와,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완벽주의자 고선영.
그리고 계속해서 한동수에게 당하는 경찰의 모습이 답답해 보입니다.
오히려 말수는 적지만 고선영을 더 잘알고 있는 손덕태가 항상 한 발 먼저 실마리를 풀어냅니다.
물론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남아있지만 결말로 향하는 과정에 자동차 추격신이 들어가면서 내용은 조금 느슨해 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흐름상 짚고 넘어가야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아이들을 구해야한다는 생각에 고선영은 한동수의 의도(?)대로 허물어져갑니다.
아이가 트렁크에 타고 있다는 말에 한동수와 몸싸움 중인 경찰차를 뒤에서 밀어버리고,
쫓아온 폭주족들을 밀쳐내는 등 위험한 행동을 감행하게 됩니다. 
한동수는 이같은 고선영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합니다. 

"이제야 파트너답네"

목적이 행동을 합리화 시켜주기 시작한 모습에서 한동수 자신을 찾아낸 것이죠. 



영화막바지에 한동수는 결국 고선영마저 납치합니다.
라디오 방송을 계속해서 진행시키면서 한 남자를 끌고옵니다.
그리고 그를 죽이라고 강요합니다. 따르지 않을 시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고선영은 갈등합니다.
평소 악인들의 처벌을 공공연하게 주장해온 고선영이지만, 이런 식의 심판을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절차가 빠져버린 심판을 강요받으면서 방아쇠를 거의 당길뻔하지만, 다행히 은수의 재치로 손덕태가 아이들을 구출합니다.

한동수의  발악과 고선영의 손에 잡힌 총구는 한동수에게 향하고 
곧 이어 이어지는 총성, 그것으로 모든 상황은 종지부를 찍습니다. 



4. 명분에 따른 당신의 행동은 정당한가?


사실 영화의 구조상「심야의 FM」은 전형적인 스릴러 구조를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한 때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 라는 스포일러로 유명했던 식스센스라든가, 
절름발이의 대변신을 보여준 케빈스페이시 주연의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으레 들어가있는 반전도 없었고, 인셉션처럼 마지막부분을 영화 초반에 보여주는 방식을 취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몰입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공감대를 끌어낼만한 범죄를 소재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고선영이 방송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스토커는 누구에게든 생길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원하는 정보를 얻기에 어렵지 않은 네트워크가 갖춰져 있고, 주의를 기울여 관리하지 않는 일반인의 경우 정보수집은 더욱 용이합니다.
그렇기에 관객은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라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늘 그런 상황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죠.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게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든 명분을 내세웁니다.
'일단 내가 살고봐야지' 혹은 '다수결의 원칙' 과 같은 명분에 따라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몇 벌씩 껴입은 옷은 자신의 생각을 방어하려는 심리로 해석해볼 수 있다.




한동수는 '사회에서 인간 쓰레기들은 없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이나 처리방식을 제외하고 명제만 살펴보면 상당히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한동수의 행동은 옳게 평가받지 못합니다. 사회적 규칙 '법'을 위반했기 때문이죠.
정당한 법 절차를 밟아서 사법기관을 통해 처벌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기는 합니다. 합법의 울타리에 숨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법의 한계를 느낄때마다 사람들은 영화「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처럼 일탈을 꿈꾸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심야의 FM에 등장인물은 모두 우리 내면에 있는 자아가 투영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고싶은대로 행동하는 한동수나,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기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고선영.
방송사를 위해 방송을 중단시키는 방송사 사장, 그리고 담당 PD와 엔지니어 및 작가 등. 모두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지위, 상황에 따라 선택지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결정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내라는 것입니다.
물론 안타까운 부분이라면 주로 힘없는 사람들의 선택지는 몇 가지 없고, 뭐라도 가진(돈이든 권력이든) 사람들의 선택지는 폭이 더 넓다는 점이죠.




5. 두 택시 드라이버의 어색한 만남 한동수와 트래비스.

영화 속 한동수는 정신이상자로 나옵니다. 
이런 그의 유일한 안식처는 고선영의 심야 라디오 방송이었습니다. 
택시운전을 하는 한동수가 심야 방송에서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주제곡을 듣고,
같은 택시드라이버인 주인공 트래비스를 따라 심판자의 역할을 하게되고 이를 소개한 고선영의 방송을 들으면서 
자신의 행동에 위안을 받고 정당화 시키게되는 부분은 우연치고는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각본같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하지만 1976년작 택시드라이버를 보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꼈습니다.

실제 영화속 트래비스는 심판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한동수와 비슷한 점이 찾자면
둘 다 사회부적응자였고 인간쓰레기는 처리해야한다는 공통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한동수와는 달리 트래비스는 판단력에 문제가 있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일탈'을 꿈꾸고 있었던 뿐입니다.

(택시드라이버에 관한 이야기는 길어지니 다음기회로)

라디오 DJ 고선영. 마지막 방송 2시간동안 살인마 한동수와 사투를 벌인다.



한동수는 고선영이 이야기하는 일부분만으로 자신만의 트래비스를 만들어냅니다.
지극히 작은 부분이지만 한동수의 삶을 지탱시키는 수단일 뿐. 실제 트래비스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죠.
그리고 급기야 만들어낸 트래비스의 삶을 자신에게 동일시하면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이른 바 심판의 시작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고선영의 멘트는 한동수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에 너무나도 시기적절합니다. 
아니 어쩌면 한동수는 고선영의 방송을 녹음하고 필요에 따라 반복청취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영화내용에 나오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때문에 한동수는 고선영의 라디오 프로그램 하차소식과 더불어 연쇄살인범에 대한 혹평을 보고 이를 바로잡으려 한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것이죠. 하지만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그의 행동은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단지 살인범일 뿐이죠.



6. 영화에 관한 생각.


일단 「심야의 FM」은 싸이코 스토커인 한동수를 통해 스토리를 원만하게 잘 풀어갔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더욱이 단순히 유명인들만 겪는 스토리로 끝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한동수나 손덕태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달랐지만 한동수는 고선영을 자신의 멘토처럼 여겼기에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손덕태는 그녀가 착해보여서라는 단순한 이유로 고선영을 따르고 도와줍니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는 유명세와는 달리 아주 단순한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유명인은 일반인보다 조금 더 노출빈도가 높고 이를 통해 쌓아온 이미지의 덕을 많이 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진행될수록 고선영은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고선영을 단순히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고 '나와 관계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범죄는 사람을 가리지 않거든요.


그밖에 영화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뭔가 무게를 잔뜩 잡고 이야기를 시작은 했는데, 기억에 남는 부분이 부분 부분입니다.
말조심을 하자는 것인지, 사람은 겉으로 평가하지 말자는 것인지 무엇하나 시원하게 뽑혀나오지는 않습니다.

(물론 영화가 굳이 주제가 명확하게 있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스릴러 영화가 액션이나 공포와 손을 잡는 것은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심야의 FM」은 그런 스릴러가 아닙니다. 마지막에 악당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단순한 주제로 보기에는 배치된 소재들이 무겁습니다.
명확하지 않은 메시지는 관객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도 그런 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심야의 FM」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특이하지만 공감대를 가진 소재를 잘 풀어낸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한국 스릴러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개인적으로 수애 씨의 변신을 주의 깊게 봤는데, 아직은 지금까지의 이미지와 크게 다른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가능성을 발견한 만큼 앞으로는 더 다양한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p.s. 

영화 출연진 중 백미를 뽑으라면 물론 유지태 씨, 수애 씨도 잘했지만 저는  마동석 씨를 뽑고 싶습니다.
부당거래에도 출연중이시죠. 물론 우직한 스타일에 이미지가 굳어져 있기는 합니다만 한동수와 대비되는 캐릭터를 잘 살렸습니다.

Canon | Canon EOS-1D Mark III | 1/80sec | F/3.2 | ISO-1600

손석태는 유일한 한동수 견제 인물이다.




영화의 중반부터 손덕태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고선영을 도와줍니다.
한동수가 내는 문제를 정확하게 맞추는가하면, 아이를 납치해 아파트를 나가려는 한동수와 몸싸움도 벌입니다.
경찰도 찾지못한 한동수의 은신처를 정확하게 짚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손덕태의 마음은 고선영에게 철저하게 외면 당합니다.

반면 트래비스라는 애청자 행세를 했던 한동수는 그녀를 통해 자신을 합리화하고 급기야 그녀를 조종하려고까지 합니다.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도와주는 손덕태와 한동수는 그래서 대조적입니다.
하지만 정작 고선영은 나중에 가서야 손덕태의 진심을 알아줍니다.

사람의 첫인상이 인간관계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할 줄 모르는 손덕태의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미련해 보이기 까지합니다.
영화 흐름상 너무 비중을 높이면 흐름을 저해할 수밖에 없기에 묻힐 수밖에 없는 인물이 손석태는 실제 영화 속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손석태는 한동수를 돋보이게 해주는 인물이면서 유일하게 한동수를 견제하는 인물이기에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의 주연은 아니었지만 손석태 역을 잘 연기해 준 마동석 씨는 숨은 공신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상으로 부족하지만 영화「심야의 FM」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자 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부당거래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너무 뻔한 포스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야의 FM 상세보기





영화 인셉션을 보기 전에 개인적인 편견(?)이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블록버스터가 그렇다는건 아닙니다만 일반적으로~)

 블록버스터는 속 빈 강정이다.

인셉션을 본 후, 이 편견은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걱정을 뛰어넘은 영화였다





스케일이 클수록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해집니다.
'다이하드'와 같이 액션을 통한 권선징악의 실현이 주요 골자가 되거나
'아마겟돈'처럼 크게는 인류애, 작게는 가족애를 소재로 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인셉션은 블록버스터 임에도 주인공인 '코브'가 가진 과거의 아픈 과거를 스토리에 녹여냄으로서 
관객들의 마음을 주인공에게 집중시킬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줍니다. 단순한 주제로 남기를 거부한 것이죠.

Canon | Canon EOS 5D Mark II | 1/80sec | F/3.2 | ISO-400
항상 심각한 코브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인공 코브가 가진 아픈 기억들은 '인셉션'을 방해하는 변수를 일으킵니다.
(뜬금없는 기차의 등장이나 이미 죽은 부인 '맬'의 등장 - 영화에서는 쉐도우라고 합니다.)
그 덕분에 단순한 액션의 나열로 지루함 후에 '던져주는'급 해피엔딩'은 없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사라지기 직전까지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고 관객을 끌어들입니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꿈이라는 소재가 가장 큰 이유이긴 합니다만
스토리에 잘 녹여낸 감독의 역할이 없었다면 그저그런 "꿈같은 이야기"에 그쳤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는 심리묘사에 달인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에 개봉했던 '인썸니아'에서  놀란 감독은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백야현상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카메라 워크로 절묘하게 녹여냅니다. '알 파치노'와 '로빈 윌리암스'의 열연과 결합하면서 이를 화면에 담아내는 것에 성공합니다.  (2000년 '메멘토'또한 논란의 여지가 없지요.)

그의 세심함은 블록버스터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를 연달아 흥행에 성공시킵니다. 
다크나이트에서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가?"라는  단순하지만 쉽게 답할 수 없는 명제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이 부분에서 히스레저의 연기는 정말 큰 몫을 했습니다. 그를 못본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화려한 액션 뒤에 찾아오는 묵직한 고민에 영화는 관객의 마음속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가슴 속에 큰 여운을 주었습니다.
영화 인셉션 또한 비슷한 구조이기에 성공은 정해져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꿈이기에 가능한 네모난 지구



인셉션의 배경은 꿈이지만, 이미 눈치빠른 관객은 이 영화가 단순히 남의 '꿈'을 도둑질하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가 내면 깊숙하게 숨겨져 있는 그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를 끌어내기 위해 단순히 '도둑질'에 그치지 않고 생각을 심는 '인셉션'을 주인공이 해야만하는 스토리로 이어갑니다.

주인공 코브는 이미 인셉션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나오지만 자신의 아내 '맬'에게 매우 성공적으로 인셉션을 합니다.
그것을 계기로 50년간의 꿈 생활을 접고 코브와 맬은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아내 맬은 인셉션의 부작용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코브가 심은 '현실이 아니다' 라는 생각하나가 맬의 의식을 완전히 잠식해버립니다. 결국 현재의 삶을 꿈이라고 생각하게된 맬은 꿈에서 벗어나고자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이 사건으로 코브는 맬에 대한 죄책감을 항상 안고 살게되고, 아리아드네가 꿈을 설계할 때 "현실에 의존해서는 안된다"라는 충고를 합니다.


이 부분부터 인셉션은 세 가지 생각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첫 번째로 코브와 맬을 통해서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로 '현실(?)을 규정받는 것', '꿈(?)을 받는다는 것'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꿈이란 스스로 키워야 이뤄냈을 때 비로소 성취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남이 만들어준 꿈은 삶을 결과적으로'편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줄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힘들 것입니다. 
코브가 맬에게 가졌던 죄책감을 떨치고 그녀를 보내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꿈꿨던 삶을 꿈에서나마 이미 이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생각은 사이토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사이토는 코브에게 생각을 심는 일을 의뢰합니다. 하지만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꿈 속에서 사고를 당하고, 깊은 꿈 속 밑바닥에 빠져버리는 림보상태가 되고 맙니다. 코브는 의뢰가 성공한다해도 사이토가 자신의 신변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안되기에 그를 구하러 꿈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갑니다. 영화의 첫 시작장면과 다시 이어지면서 마지막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클라이막스에 해당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쉐도우로 등장하는 맬




상처를 입은 사이토는 자신의 꿈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고자하는 일이 잘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수많은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아쉬움, 슬픔, 분노, 좌절 등 여러 감정이 있겠지만 꿈이 좌절된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포자기'라고 불리는 좌절감입니다.'난 이대로 평생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거야' 라고 느끼는 감정'늙어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면서 살아가겠지'라는 사이토의 림보상태와 매우 흡사합니다.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이 '용기'입니다.
자신앞에 놓여있던 총을 사이토는 사용할 용기가 있었을까요? 마지막과 연결되는 이 부분에는 사실 조금은 논란이 있긴하지만 첫 꿈 속에 들어와서 했던 사이토의 말을 생각해보면 Yes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 번째 생각은 인셉션의 대상이었던 '피셔'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비록 그는 생각을 인셉션 당하는 타겟이지만  단순히 주입한대로 움직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옆에서 '부추겼다'라고 하는게 더 가깝지요. 이는 전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인셉션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일 때 보다 성공확율이 높다"는 임스의 말은 코브-맬의 경우를 봐도 지극히 타당한 선택이고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집고 넘어가야할 것은 부정적인 사람이라도 그 내면에는 자신을 믿어주길 바라는 심리가 있다는 점 입니다. 맬에게 처럼 '지금 삶은 현실이 아니야'라는 식의 생각을 주입하려했다면 분명히 실패했을 것 입니다. 
이런 정반대의 심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시켜주는 장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Canon | Canon EOS 5D Mark II | 1/100sec | F/3.5 | ISO-800

캐릭터 임스는 매우 여유있다. 긍정적일 수밖에 없나?





결국 놀란 감독이 인셉션으로 이야기하고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놀란 감독은 그 답을 관객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해피앤딩으로 끝나가는 마지막 장면, 코브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만나는 직전에 테이블 위에 팽이를 돌립니다.
이 팽이는 맬이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토템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평소에는 팽이의 움직임에 집착하던 코브가 팽이의 움직임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지 않고 갑니다.
불안한 마음을 재촉하듯 카메라는 한참 전에 나갔음에도 아직도 돌고 있는 팽이를 보여줍니다.
위태위태한 순간 쓰러질듯 돌아가는 팽이의 마지막을 감독은 확인시켜주지 않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너희들은 아직 꿈꾸는 중인겨?!


 



팽이는 계속 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결국에는 쓰러졌을까요?
꿈과 현실의 구분을 남이 해주어서는 안된다는 명제를 스스로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감독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놀란 감독다운 결말과 여운에 아쉬움이 남지만 결론은 결국 관객 스스로가 내려야할 몫인 듯 합니다.

p.s :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에 대한 불만입니다.

 영화 속 그의 모습은 시종일관 이렇다




       너무 잘 짜여진 스토리가 코브의 내면 연기를 오히려 방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볼 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맬 역으로 나온 마리안 꼬띠아르의 연기가 없었다면 코브의 무의식이 이만큼 잘 표현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Favicon of http://psychos.egloos.com BlogIcon 호모싸이코스 2010.08.11 00:00

    음.. 내가 아직 영화를 안봐서 글을 읽어도 사실 무슨 말인지 잘 와닿지가 않네.글을 다시 읽어보는 중이야. :)

    • Favicon of http://maker04.tistory.com BlogIcon Ð현신 2010.08.12 00:00

      안본 사람을 위한 글은 아니라서 그럴지도 앞으로는 그 부분을 고려해야겠네.

"영화를 봐야지" 해서 망설임 없이 선택했던 영화가 몇이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몇 편 있는 듯도 싶다.
1996년도에 개봉했던 '101 달마시안' 이라는 영화와
1997년도에 영화를 보러갔다가 개봉영화중에 끌리는게 없어서 보게된 '하나비'라는 영화.
좀더 거슬러올라가면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시절에 부모님과 같이봤던 드라큐라 이정도였던가?

물론 망설임이 없었다는 것이 영화의 흥행이나 완성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단지 원작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뿐......

그만큼 웹툰을 보고난 후의 감동이 영화로 재현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기대감이 컸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이끼'를 보고 왔습니다.

앞서 글을 썼다시피, 박해일과 정재영을 비롯한 많은 출연진들의 열연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이야기했습니다.

글쓴이의 친구가 이야기했듯,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이 좀 걸리긴했지만
'원작이 튼튼하니 절반은가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 '이끼'는 그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1. 각 캐릭터의 특징을 전혀 살려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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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 류해국은 앞뒤 꽉막히고 타협을 모르는 집요한 캐릭터 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굽히지 않으며, 타협하라는 검사의 회유와 협박을 고스란히 녹음을 하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나머지는 신경쓰지못하는 성격 탓에 부인과도 이혼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영화 '이끼'에서의 류해국은 집요하긴 했지만 신경질적이고 감정적이었으며, 꼼꼼하긴 했지만 서툴렀습니다.
물론 자신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산골마을에서 제정신을 차리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류해국은 두 번째 위협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게되고,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도망갈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런 류해국을 이영지가 되려 닥달하는 모습마저 나옵니다.

당연히 영화 전체적으로 류해국의 모습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나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유는 결말에 나오더군요. 일단 패스.

덕분에 상대적으로 천용덕, 류목형, 전성만, 하성규, 김덕천, 이영지, 박민욱 캐릭터는 살아보였습니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됐죠. 주인공이 그 비중을 살리지 못하는 영화는 끌어당기는 맛이 없습니다. 오히려 젊은시절의 류목형이 더 눈에 들어왔으니 말 다했죠. 그나마 천용덕과 김덕천, 박민욱 이 들 세 캐릭터가 없었으면 영화는 더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들 캐릭터도 많이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천용덕의 모습은 류목형을 이용해 자신의 야망을 채우고 권력을 키운 인물로 비춰질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연출해내지 못했으며, 김덕천의 대사들은 맛깔스럽고 코믹하긴 했으나 천용덕의 표현처럼 "백지"를 보여주기엔 미흡했습니다. 덕분에 김덕천은 천용덕 밑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하다 죽은 "착한 코미디언"으로 남게 됐네요. 더욱이 박민욱 캐릭터는 전형적인 요새 검사들을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없었고, 등장할때마다 재미를 선사했지만 정작 류해국의 제보를 듣고 반신반의 조사를 하다가 "껀수하나 건진" 타락한 검사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그런 껀수를 건지게 해준 류해국에게 "꼴통 기질을 빼면 좋은사람이야"라고하는 대사까지 합니다.



2. 개연성 없는 사건의 나열, 영화를 풀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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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엉성한 캐릭터들을 가지고 영화를 풀어간 것은 어찌보면 다행스럽다라고 표현해야할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시작부터 영화는 엉성하기 그지없습니다.
원작 이끼를 보지않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모든 논란의 시작은 류해국이라 생각할 것이고, 무언가를 감추는 마을사람들이 그 원인이지요. 영화의 전개는 그렇게 강요하듯 시작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류목형의 죽음을 전해듣고 시골까지 내려왔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마을에 남으려 합니다.
단지 마을 사람들은 이유없이 계속 서울로 보내려하고, 그런 마을 사람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류해국은
"제가 마을에 있으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만을 반복합니다.

그러다 공동소유의 토지를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급속도로 진행이되는데,
그제서야 천순경의 뒷조사 자료를 천용덕이 받아보는 장면에서 류해국이 남으려고 했던 첫 번째 이유가 나옵니다.
앞뒤가 전혀 맞지않는 것이죠.
집 밑으로 난 통로를 발견한 후에서야 밝혀진 이유는 단순히 억지를 만회하려는 구색맞춤과 지루하게 연속된 초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엮어넣은 느낌이 너무 강해보였습니다. 게다가 흐름을 끊는 환기성 장면은  영화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3. 억지로 엮은 스토리를 매듭짓는 뜬금없는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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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류목형의 죽음의 원인을 알아내려는 류해국을 중심으로 영화는 어떻게든 진행됩니다.
그리고 이를 제보받은 박민욱 검사의 가세로 진행은 탄력을 받게되고, 2명이 죽고나서 천용덕이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으면서
결말로 치닫게됩니다.
그 와중에 이영지는 이를 박민욱에게 알리고 마지막 결전의 날에 박민욱은 경찰들을 이끌고 마을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면장면에서 천용덕은 이영지가 넘긴 결정적인 증거자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고, 연행되기전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도 원인 불명의 분노를 내지르면서 자살을 합니다. 기가막힐 노릇이지요. 그많은 연줄을 가지고 있던 천용덕이 뭐가 아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면서 분노를 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단지 그렇게 죽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한 껀 올린 박민욱 검사는 첫 등장과 비슷한 짐싸는 장면을 통해 서울로 다시 복귀하게 되고 이를 통해 류해국과 화해하게됩니다. 그 뻗뻗했던 류해국도 이런 결말이 싫지는 않았는지 술한잔하자는 박민욱의 제안에 흔쾌히 전화 주겠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마을.

리모델링 된 건물들과 마을 중앙에 크게 들어선 교회와 놀이터를 보면서 한껏 밝아진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마을 제일 위에 위치한 천용덕의 집에 이영지가 보입니다. 반갑게 걸어가던 류해국은 문득, 자기가 마을을 처음오게된
아버지 류목형의 부고소식을 전해준 목소리를 떠올립니다.

"아버지 류목형 씨가 돌아가셨습니다. 오셔야겠지요?"

류해국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저 멀리 이영지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알 수 없는 흐릿한 미소가 남고, 영화는 그렇게 이영지의 복수극처럼 마무리됩니다.

류해국의 첫 장면을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천용덕은 류덕형의 아들이 왔다는 소식에 "어찌알고?"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애초에 결론을 지어놨던 것이지요. 앞서 이야기했던 류해국 캐릭터의 나약한 모습은 이것을 염두해둔 설정이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나마 성공한 연출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뜬금없죠. 다 그려놓은 그림에 제출자 이름만 바꿔놓은 기분입니다.
원작이 너무 심심한 결말이라 그것이 싫었던 것일까요?

그 덕분에 영화는 분위기를 살리지 못한 코믹스릴러에 뜬금없는 반전이 추가된 국적불명의 영화가 됐습니다.
이 쓸데없는 반전과 여운은 두고두고 씁쓸함을 남길 듯 합니다.



4. 아쉬움이 남는 영화 '이끼'


원작을 각색한 영화는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재구성한 영화를 볼 때 많은 부분을 원작과 비교를 하게되고 실망을 하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끼의 경우는 많이 안타깝습니다.
원작과 완전히 똑같은 마을 배경과 등장인물들로 구성됐고, 이야기흐름까지 거의 비슷합니다. 결론을 제외한 매우 많은 소재들이 똑같은 것들로 사용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이끼는 캐릭터를 살려내지못했고, 그로 인해 스토리를 엉성하게 구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천용덕의 손에 놀아난 류목형의 복수를 이뤄낸 이영지라는 아주 단순한 반전스릴러가 된 것이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원작을 너무나 감명깊게 봤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강우석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강우석 감독의 영화 투캅스, 공공의 적 등 그가 감독을 맡은 영화도 재미있게 본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분위기와 항상 빠지지 않는 웃음코드로 풀어가는 그의 방식이 이번 만큼은 이끼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가 나오긴 힘들다' 라는 말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 에테르 2010.07.15 00:00

    님이 보시고 작성하신 리뷰 잘읽고 갑니다.도움이 된 부분,그리고 몰랐던 부분 보고갑니다. ^^

    • Favicon of http://maker04.tistory.com BlogIcon Ð현신 2010.07.15 00:00

      댓글 감사합니다. 도움되신 부분이 있었다니 저도 기쁘네요~_~

  • Favicon of http://psychos.egloos.com BlogIcon 호모싸이코스 2010.07.16 00:00

    너무 강우석 냄새 나는 작품..'이끼니까' 보러 갔지만 '역시 강우석' 하고 나오게 되는..

    • Favicon of http://maker04.tistory.com BlogIcon Ð현신 2010.07.17 00:00

      이끼도 강우석의 손길만은 피해갈 수 없었던...

  • Favicon of http://lebius.egloos.com BlogIcon lebius 2010.08.06 00:00

    유해국이 서울 안간건 딱히 갈만한 곳도 없었고 마을 분위기가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그랬겠죠. 위화감. 그런게 들었겠죠.(원작에선 어떤 뉘앙스라고 말하지만, 위화감이 들었다는 표현이 맞겠죠) 천용덕이 자살한건 이해가 되는데요. 누구하나 자신에게 태클거는 사람이 없었는데, 아들죽고 자기 제국이 심하게 훼손되니까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거겠죠. 그보다 검사가 5분 시간준게 더 이상함. 자살할 가능성이 농후한데 말이죠. 그리고 전체를 영지가 계획했다고 할수도 있지만, 아니라고 할수도 있죠. 뭔가 기대한건 있겠지만, 결말까지 시나리오를 짤수는 없는거구. 변수가 한두개가 아니니. 유목형이 죽기전 유해국에게 전화한적이 있으니, 전화번호는 영지도 어찌 알수 있었다 할 수있겠죠. 원작과는 주제설정부터 좀 다르죠. 각색을 했으니 강우석 영화자체는 강우석 작품이라고 봐야겠죠. 그나마 원작을 각색하여 도스토예프스키의 아이디어와 사상을 강화해서 플롯을 스케일 크게 만든건 강우석이죠.강우석이 원작에서 그걸 끌어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 작품을 영화화 한 듯 싶네요그러다보니 유목형의 인물상이 조금 틀어져서 기도원 사람들이 죽은 장면을 설명하는 부분이 매끄럽지 못하게 되었지만,(공범의식 개연성 부재)뭐. 그건 어쩔수없겠죠. 주제를 바꾸고 인물 수정하다보면 아귀가 틀어지는건 뭐 필연이죠.

    • Favicon of http://maker04.tistory.com BlogIcon Ð현신 2010.08.07 00:00

      물론 이해를 하려고 생각하면 끝없이 이해해줄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하지만 류해국이 서울을 안간게 딱히 갈만한 곳이 없다는 부분은 어디서 아셨나요? 그에 대한 단서는 류해국이 한참 마을에 정착해서 살기로했을때하드 디스크 자료를 조사하다가 내용을 요약한 수첩이 보이면서 알 수 있죠? 마을에 처음왔을 때로서는 알기 힘듭니다. 게다가 영화 시작시에 류해국이 박민욱 검사를 엿먹였다는 부분은 알 수 있지만 그 단순한 대화를 통해서 류해국의 전체적인 성격을 끌어내는 것은 사실 상 류해국이 시비를 걸기전까지는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마을 사람들에게서 범죄의 인상을 받았다, 혹은 위화감을 느꼈다. 이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장치도 장례식 술자리에서 술을 주고받는 부분에서 술을 못하는 류해국에게 술을 권할 때, 마을 사람들이 서울이야기를 계속 언급할 때 말고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뒤에 사망확인서가지고 다툼이 일어났을 때가 돼서야 류해국의 성격이 깐깐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죠.제가 볼땐 오히려 서울서 온 외지사람이 언제 자기들 마을을 떠날 것인지, 까칠하게 대하는 부분이 더 설득력 있어보입니다만 저랑은 생각이 다른신가봅니다^_^그런 이유로 류해국의 캐릭터는 치밀하고 집착이 강한 원작과는 다른 캐릭터가 됐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천용덕의 자살 부분은 솔직히 홧김자살이라는게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만큼 용의주도하면서 능글맞은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자체가 이미 그를 자살로 몰고 가고 있었기에 어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류해국에 의해서 차멸을 맞이하게된 천용덕이 이에 화를 못이겨 자살한다는 부분을 이해해줄 수 있다하더라도, 류해국의 캐릭은 영화내내 나약했고, 이것이 이영지 화룡점정을 뒷받침하는 것 입니다. 아니라면 굳이 이영지의 전화목소리를 영화 마무리로 들려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각색을 통해 주제설정이 다를 수 있다는 점과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작품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저도 100% 공감합니다.하지만 강우석은 원작을 매우 흡사하게 복제했습니다. 배경은 둘째치더라도, 중간에 나오는 스토리와 주요 장면들은 모조리 가져왔습니다.등장인물의 성격도 재구성하긴 했지만 그 뼈대가 거의 흡사한 상태였습니다.딱히 다른 점이 있다면 위에 언급했던, 천용덕의 홧김, 박민욱 검사의 모호한 포지션, 류해국의 나약함, 이영지의 뒷통수 정도겠습니다.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흡사한 모습이고 줄거리와 그 흐름까지도 모두 같다고 보입니다.이유는 둘째치더라도 천용덕의 말로또한 같습니다. 그렇기에 각색했으니 다른대로 봐야한다는 주장은 이런 점을 볼 때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다르게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아니라, 영화를 본 후 원작을 본 사람이라하더라도 허무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도스도예프스키의 사상이 류목형 캐릭을 틀어지게 한 부분은 저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원작에서 류목형은 자신의 아들이 모든 것을 대신처리해줄 대리인으로 생각하면서 눈을 감습니다만,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은 애초에 없지요.기도원 사람들이 죽은 장면을 설명하는 부분이 매끄럽지못한 것은 인물상이 틀어졌다기보다 그냥 설명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시간 부족이 아니었나 싶기는 합니다.결론으로 돌아와서, 각색이 다른 작품이지만 강우석은 원작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어떤 주제를 각색해서 보여주고자 했는지 모호한 상태의 이끼를 만들어낸 것 입니다.모범답안을 그대로 배껴서, 서술부분 문체를 바꾸고 이름만 강우석이라고 쓴 것 같다는 것입니다.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다 라고 한다면, 애초에 강우석감독이기에 한 기대대로 결과가 나왔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